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넘버 3 (문단 편집) == 감독 및 배우 == [[서울대학교]][* 서울예대가 아니다. SNU 서울대 맞다.] 영화 동아리 '얄라성' 출신인 1959년생 송능한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송 감독은 <[[태백산맥(영화)|태백산맥]]>, <[[보스]]> 등의 각본가 경력을 거치고 난 후 이 작품에서 정식 연출자로 데뷔하였다. 즉, 신인 감독의 입봉작인 셈. 그런데 어쩐지 그 감독이 학벌이 무시무시한 데다가(...) 의외로 전통적인 충무로 영화판에서 아랫단계를 거쳐 올라온 경우이다. 이때 송능한의 재능을 알아보고 감독으로 밀어준 사람이 바로 태원영화사의 [[이태원(1938)|이태원]]. 한편 송능한은 90년대와 2000 년대 사이 중간에 낀 세대라고 볼 수 있는데, 박철수, [[장선우]]보다는 아랫 세대이지만 [[김지운]], [[박찬욱]]보다는 한 세대 위였던 것. 어쨌거나 이 영화의 성공 이후 촉망받는 신예 감독으로 주목받게 되었으나 다음 작품인 [[세기말(영화)]]에서... 자세한 것은 <[[세기말(영화)|세기말]]>에서 내용을 확인할 것. 주연으로는 당시 영화계 최고의 스타 [[한석규]]가 출연하였고, 조연으로는 [[최민식]], [[송강호]], [[이미연(배우)|이미연]], [[박광정]], [[방은희]], [[박상면(배우)|박상면]] 등이 출연하였다. 이중 최민식과 이미연은 주조연으로 볼 수 있다. 어쨌든 훗날의 기준으로 따지면 '''올스타급 출연진'''인 셈. 여기에 <[[남자 셋 여자 셋]]>으로 얼굴이 알려진 [[홍석천]]이 [[카메오]] 성 단역으로 출연하였고, 무명이었던 [[박성웅]]이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그밖에 영화 평론가 [[정성일]], 문화 평론가 강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집행장이었던 [[김홍준(영화인)|김홍준]]이 카메오 출연하였다. '''그런데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중 상당수가 커리어에 일대 전환을 겪게 되었다.''' 일단 한석규는 두말할 것 없는 충무로 최고의 배우. 간단히 말해, 한석규가 이 영화에 출연한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화제가 되었다. 사실 한석규가 워낙 잘 나가던 시절이었던지라 '넘버 3'는 순수하게 흥행 성적만 놓고 볼 경우 당시 한석규 출연작 중에선 실패한 측에 속한다. 그러나 한석규가 이런 식의 쌈마이 깡패 역도 소화낼 수 있다는 것을 각인시켰다. [[최민식]]의 경우 <[[서울의 달(드라마)|서울의 달]]>이나 <야망의 계절> 같은 TV 드라마를 통해 유명한 배우였긴 하나, '''영화 쪽에서는 미지수였던 상태.[* 물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영화)|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출연한 적이 있긴 하지만...]''' 사실 최민식이 이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한석규의 형인 한선규가 운영하는 소속사에서 한석규와 함께 한솥밥을 먹던 사이로 한석규가 캐스팅 될 때 일종의 끼워팔기 형식으로 들어갔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민식은 이 작품에서 호연을 펼쳐 '''영화 배우로서 재발견되었다.''' 그리고 <[[조용한 가족]]>과 <[[쉬리(영화)|쉬리]]>에 캐스팅되며...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박상면(배우)|박상면]] 역시 상황은 비슷하였다. 당시 박상면은 송강호보다도 더한 무명 배우였던 상황. 심지어 불러주는 곳이 없어 본가인 고깃집에서 숯불을 나르던 신세(...)였으나, 이 영화 덕분에 무명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국내 최초의 조폭 코미디물을 만들어 내었는데, 흥행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쥐면서 이 작품의 성공은 이후 충무로의 조폭 영화 붐의 신호탄이 되었다. 그리고 박상면은 이후 영화 [[반칙왕]][* 이 영화에서도 송강호와 함께 프로레슬러 동료로 호흡을 맞췄다.]과 시트콤계의 레전드로 유명한 <[[세 친구]]>를 통해서 더욱 유명해진다. [[안석환]]이나 [[박광정]]의 경우는 경우가 약간 다르다. 이 두 사람은 당시 연극계와 영화계를 주름잡던 배우였기 때문에 딱히 이 영화에 출연한 것이 득이나 실이 되지는 않았다. 물론 두 사람 역시 호연을 펼쳤긴 하다. 다만, 당시 안석환은 박광정보다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덜 알려져 있었던 편인데, 이 영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당연하지만 몸값도 뛰어올랐을 것이다.-- [[방은희]]의 경우는 약간 특이하다. 방은희 본인이 훗날 쇼프로 등지에서 주장한 바에 따르면, 이 영화로 이득은 커녕 손해만 봤다고 한다. 왜냐하면 영화의 흥행으로 몸값이 높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제작자들이 오히려 캐스팅을 꺼려 버로우를 탈 수밖에 없었다(...)는 것. 다만 이러한 얘기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이며 쇼프로에서 재미를 위해 과장한 것일 가능성도 있다. 사실 방은희는 이 작품 출연 이후 영화 출연은 전무하지만, '''방송가에서는 인기가 폭발해 버렸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보여준 이미지 덕분에 배우로서 이미지가 바뀌며 분야 자체가 달라지게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이 영화에서 방은희는 노출씬이 포함된 섹시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영화 제작자들이 이러한 연기를 다시 요구한 반면, 배우 본인은 꺼려서 아예 영화 쪽에서 TV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연(배우)|이미연]]의 경우, 이 영화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 이미연은 90년대 초반 하이틴스타로 잘 나가는 배우였으나, 본격적으로 성인 연기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작품운이 따르지 않아 90년대 중반 무렵 출연 기회도 줄어들었고 흥행작도 없었던 상황. 그러나 <넘버 3> 출연 덕분에 성인 연기자로서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게 되었고, 덕분에 연기 인생에 전환점을 맞이 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대중성과 상관없이 진지하게 연기에 임하는 우수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덕분에 현장 분위기는 '''학구적'''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한 연예 정보 프로그램에서 한석규와 이미연이 현장에서 시나리오에 필기를 해가며 캐릭터 분석을 하는 장면이 찍히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